늘 최고의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목회서신 조회 수 22953 추천 수 0 2012.03.09 11:39:19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풀리리라”(마 16:19)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열쇠는 예수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도의 특권입니다.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천국 열쇠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인도의 한 촌부는 서구인들이 타다가 남기고 간 자동차를 보고 그 차를 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차가 어떻게 굴러가는 지를 몰라 앞에서 말들이 그 차를 끌게 했다고 합니다. 자동차가 스스로 굴러가는 것인 줄 전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는데, 우리가 그 능력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자동차를 말로 끌게 하는 그 시골 촌부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천국 열쇠가 주어졌음을 알아도 사용하지 않는 성도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무리 가진 재물이 많아도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는 필경 굶어 죽든지 아니면 영양실조에 걸리고 말 것입니다.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천국 열쇠는 작습니다. 그러나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 큰 나무가 되고 그 나무에 새들이 날아와 안식과 쉼을 누리는 것과 같이, 그 작은 열쇠 속에 천국이 담겨져 있습니다. 작은 열쇠지만 하늘의 보고를 열어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의 축복을 누리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천국 열쇠를 사용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1. 최고의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리석어서 하나님의 응답을 알아채지 못하기도 하고, 응답해 주신 것에 은근히 불만을 품기도 합니다. 응답의 결과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관점과 기준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행 3:1-10)에서 보면,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가 지나가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앞에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느 사람들에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깡통을 앞에 내밀며 동전 몇 입을 구걸을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동전을 던져주는 대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그를 걷게 하였습니다. 앉은뱅이는 그 즉시로 깡통을 집어 던지고 성전 안으로 뛰어 들어가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합니다. 

앉은뱅이가 원하는 것은 동전 몇 잎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성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깡통을 내밀며 동전을 구걸하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전의 사람으로 삼고자 손을 드셨는데,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전 몇 잎을 기대하는 초라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이상의 것, 우리가 기도하고 간구하는 그 이상의 것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분이십니다. 


어린 시절, 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명절날이 되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십리 길을 걸어 친척집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친척어른이 10원짜리 새 돈 하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 나이에 10원짜리가 큰 돈이기도 했지만 새 돈이라는 사실에 더욱 기뻤습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열심히 뛰놀다 보니 호주머니에 있는 동전이 없어진 것입니다. 얼마나 슬프던지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큰 일이 났다 싶었던지, 전을 붙이던 아주머니가 달려오고, 장작을 나르던 아저씨가 장작을 팽개치고 뛰어왔습니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묻습니다. 저는 선물로 받았던 10원짜리 동전을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아줌마 아저씨들이 10원짜리 동전을 꺼내어 내 손에 쥐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저의 손에는 10원짜리 동전으로 수북히 쌓였습니다. 이보다 수지맞는 장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어린 아이의 능력으로 어디 가서 10원짜리 동전 하나 벌어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엉엉 소리쳐 울고 보니 손 안에 동전이 수북히 쌓였습니다.  사람의 능력과 재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목놓아 엉엉 울어 버리면 하나님께서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할 때, 채워 주십니다. 채워 주시되 보통으로 채워 주시는 것이 아니라 30배, 60배 아니 100배로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 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보여 주리라”(렘 33:3)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냥 응답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 이상으로 넉넉히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2. 최적의 때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래서 빨리 응답해 주고 속히 응답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나의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빨리 응답해 주실 때도 있지만 더디게, 늦게 응답해 주시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이미 때를 놓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때가 가장 완전한 때요 적합한 때인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오랜 기간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출입하실 때에도, 이 앉은뱅이는 여전히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앉은뱅이를 치료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연후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전도할 바로 그 때, 이 앉은뱅이는 사도 베드로를 만나 걷고 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왜 주님은 앉은뱅이를 진작 고쳐주지 않으시고 이제야 고쳐 주셨을까요?  그것은 앉은뱅이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5천명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섬으로서 사람들이 놀라 솔로몬 행각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이는 나의 능력으로 나은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못 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하신 것입니다. 그 분은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였습니다.”라고 복음을 선포하자, 그 날에 성인 남자만 무려 5천명이나 예수를 영접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이 앉은뱅이를 낫게하실 뿐 아니라, 이 앉은뱅이의 치료를 통해 5천명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때는 정확합니다. 우리는 좀 더 빨리, 좀 더 속히 응답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분일초도 틀림이 없는 분이십니다. 가장 합당한 때에 가장 알맞은 때에 응답하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틀림이 없는 분이십니다. 정확한 분이십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때를 성경은 ‘때가 차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복음을 전하시기 합당하신 그 때에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지중해 일대에 헬라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있을 때,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게 된 바로 그 때에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알맞은 때에 주님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기다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완전한 때에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받은 주의 종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아들을 약속 받았지만 25년을 기다린 100세가 되어서야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감옥에서 2년을 꼬박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자 없이, 잊혀진 존재로서 2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2년의 시간을 보내고 바로의 총리가 되어 애굽을 다스리면서부터 7년의 풍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7년의 풍년 동안 창고를 새로 짖고 곡식을 저장하여 7년 흉년을 대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늦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행하심으로 더 큰 기적과 더 큰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분명히 다릅니다. 내가 생각하는 응답과 하나님의 응답은 다릅니다. 내가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의 때는 분명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방법, 그리고 하나님의 때는 항상 옳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는 때가 다르다고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다고하여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나아가면 됩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면 멈춰서면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요 전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의 결혼잔치 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하인들에게 아구까지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떠서 손님들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하인들은 영문을 알지 못했지만 그대로 행했을 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그럴때, 맹물과 같은 우리의 인생이 포도주와 같이 맛이나는 축복된 인생으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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